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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내 마음의 고향           

  • Margo Jeong
  • 2020년 7월 28일
  • 2분 분량



나에게는 무척 가깝게 지내는 H라는 친구가 있다. 우리가 만나게 된 건 SNS를 통해서이니 조금 독특하다고 할 수 있는데, 마음이 잘 맞아 함께 어울린 지가 어느덧 4~5년은 된 듯하다. (아마도... 내 기억력을 사실 믿을 수 없다...)


어릴 적 학교 컴퓨터 교과서에는 언제나 '인터넷에서 친구를 사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는 다소 우스운 경고가 있었다. 하지만 모순적이게도 어른이 된 지금 내가 친하게 지내는 친구들 중 절반 이상은 모두 온라인에서 만난 사람들이다. 온라인에서 친구를 사귀는 것의 장점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좋은 것은 취향이 잘 맞는 친구를 사귀기가 수월하다는 점이다. 서로의 글과 사진을 보며 비슷한 취향을 눈치채고 조심스레 말 걸어가며 가까워진 사이들이니 이 얼마나 탄탄하고 올바른 우정의 형성인가! 물론 인터넷상의 사람들을 언제나 조심해야 하는 건 맞지만, 사실 그건 현실 세계에서도 마찬가지 아닐까? 나는 인터넷의 순기능을 믿는 밀레니얼 세대 중 한 명이다.



H와 나 역시 취향이 잘 맞는 인터넷 친구로 시작해 조금씩 가까워지며 현실에서도 친구가 되었다. 서로의 집을 공유한 뒤로 나는 H의 자그마한 자취방을 뻔질나게 들락날락했는데, 오죽하면 우리 집보다 이 친구의 집이 더 편하다고 느낄 정도였다. H가 중간에 한 번 이사를 했지만, 새로 이사한 지금의 집도 틈만 나면 찾아가고 있다.


평소 못 말리는 만성 불안과 극심한 감정 기복에 시달리는 나인데, 이상하게 H의 집에만 가면 그 모든 것이 잠잠해지고 그저 평화롭고 차분한 마음을 유지할 수 있었다. 마음이 여유로우니 H의 작은 자취방은 세상에서 제일 아늑한 집같이 느껴졌고, 낡은 동네는 낭만이 가득한 아름다운 골목같이 보였다. 그래서 H에게 종종 '여기 살면 포근하고 아늑하니 참 좋겠다' 같은 말을 던지기도 했다. 나는 그게 진짜 집과 동네가 좋아서인 줄 알았다. H가 이사하기 전까진.



H가 머무는 곳의 분위기는 그녀가 이사하고 나서도 달라진 것이 없었다. 자취방도 동네도 모두 바뀌었지만, 새로운 곳에서도 여전히 나는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었고 그제야 이 평온함이 장소가 아닌 H 때문이구나 깨닫게 되었다.


H의 집에서는 뭘 해도 재밌고 뭘 먹어도 맛있다. 매일 먹는 라면도 이 집의 작은 알파카 밥상 위에서는 더 맛있고, 심심할 때만 하는 폰게임도 이 집 바닥에 드러누워서 하면 두 배는 더 재미있다. 특히 H와 나는 음식을 대하는 마음가짐이 잘 맞아서 맛집 탐방을 곧잘 다니곤 하는데, 이 친구네 동네 맛집을 찾아다니는 건 세상에서 제일 즐겁다!


오늘도 이 집에서 실컷 놀고 돌아가는 길에 문득 이 동네가 무척 포근하다고 생각했다. 이전에는 전혀 그렇게 생각해본 적이 없는 동네다. 내 손에는 H가 들려준 먹을거리가 무겁게 있었고, 내가 꼭 할머니 댁을 방문했다 돌아가는 꼬마 손녀가 된 것 같아 자꾸 웃음이 났다. 마음이 무거울 때면 나는 언제나 H의 집을 찾고, 그곳에서 그녀와 놀고 나면 금세 기분이 좋아진다. 나에겐 H가 어디있든 늘 한결같은 포근함을 주는 마음의 고향 같다. 가끔은 이 친구가 없이 내가 어떻게 살까 하는 걱정마저 생긴다. (해외 취업한다더니...) 내가 받는 이 느낌만큼 나도 H에게 보답하고 있을까? 성질이 변덕스러워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기는 진작에 포기했지만, 그녀에게만큼은 꼭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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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의 옛집이 있었던 오래된 동네. 스물두 살부터 스물다섯 살까지 우리 집보다 더 많은 추억이 이 거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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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 by Margo Je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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