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프란시스 하>와 <미스트리스 아메리카>, 내가 가진 두 얼굴
- Margo Jeong
- 2020년 5월 30일
- 3분 분량
최종 수정일: 2020년 5월 30일

영화계의 수많은 감독-배우 콤비 가운데 가장 좋아하는 조합을 꼽으라면 단연 노아 바움백과 그레타 거윅 부부다. 노아 바움백 감독이 쓴 섬세하고 현실적인 각본은 일상 연기 분야의 천재 배우 그레타 거윅을 만났을 때 최고로 빛이 난다. 그레타 거윅은 원래 영화감독을 꿈꾸다가 우연한 기회에 배우로 데뷔했다. 지금은 감독으로 활약하며 말할 필요도 없이 놀라운 재능을 증명하고 있지만, 사실 나는 배우로서의 그녀를 정말 좋아한다. 특유의 웅얼거리는 말투, 어딘가 어리바리하지만 귀엽고 엉뚱한 분위기, 진짜 있을 것만 같은 그녀의 찰떡같은 캐릭터 소화력은 뉴욕 독립 영화계를 매혹하며 ‘멈블코어(mumblecore; mumble에는 말을 웅얼거린다는 뜻이 있지만, 그녀의 말투 때문에 붙은 이름은 아니다. 캐릭터들이 끝없이 쫑알쫑알 별것 아닌 이야기를 한다는 뜻에서 mumble을 사용했다.)’라는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내기까지 했다. 평범한 듯 우스운 일상을 그리며 인간 군상 하나하나를 섬세하게 묘사하는 이들의 영화는 한번 그 매력에 빠지면 결코 헤어나올 수 없는 중독성을 가지고 있다. 나 역시 그 매력에 단단히 중독된 한 사람이라, 영화 관람 열 번 중 세 번은 꼭 이들의 영화를 보고 또 보는 편이다.


그중 최근에 본 영화 두 편 <프란시스 하>와 <미스트리스 아메리카>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사실 이 두 영화를 다시 보려고 고른 것은 각각의 이유가 있는데, 한 편은 좋은 것을 또 즐기고 싶어서, 그리고 다른 한 편은 싫은 감정을 극복하고 싶어서였다. 고백하자면, 나는 노아 바움백과 그레타 거윅의 영화 가운데 프란시스 하를 가장 사랑하고 미스트리스 아메리카를 가장 싫어했다.
프란시스 하와 미스트리스 아메리카는 주인공들이 나와 똑같은 단점을 가졌다는 공통점이 있다. 프란시스 하의 주인공 프란시스는 사람들과의 관계나 돈 문제가 얽힌 현실적인 일에 능숙하지 못하다. 미스트리스 아메리카의 주인공 트레이시는 남을 쉽게 무시하고, 종종 양심적이지 않은 행동도 아무렇지 않게 한다. 다른 주인공 브룩은 자기 생각에 취해 남들의 이야기를 잘 듣지 않고, 세상을 자기중심에서만 바라본다. 이 모두는 내가 영화를 보며 떠올린 나 자신의 단점이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왜 나는 프란시스 하는 그토록 좋아하면서 미스트리스 아메리카는 그렇게 싫었던 걸까?
물론 작품의 완성도를 보자면 미스트리스 아메리카는 프란시스 하를 따라갈 수 없다. 그러나 내가 미스트리스 아메리카가 싫었던 이유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 미스트리스 아메리카를 볼 때면 나는 늘 도중에 영화를 꺼버리고 도망가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단순히 영화가 싫다고 말하기엔 조금 더 미묘하고 복잡한 기분. 그래서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땐 수작은 아니라는 핑계로 외면해버렸고, 두 번째로 봤을 때야 그 이유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볼 수 있었다. 내가 미스트리스 아메리카가 싫은 이유는 바로 내가 가장 싫어하는 나의 모습들만 보여주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단점이 곧장 자신의 싫은 점이라고 표현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모든 사람에게는 분명 스스로 단점인 걸 알면서도 그건 일종의 개성일 뿐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긍정적인 단점’이 있다. 프란시스 하가 좋은 이유는 내 단점을 프란시스에게서 똑같이 봤을 때 그것이 결코 문제가 아닌 ‘긍정적인 단점’이라고 생각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영화 속 인물들은 그녀를 조금 어렵거나 신기하게 바라볼지언정, 결코 그녀의 단점을 평가하려 하지는 않는다. 영화는 있는 그대로 프란시스와 주변인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그녀를 둘러싼 모든 상황은 단점에 의한 결과가 아닌 그저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비추어진다.
그런가 하면 또 사람들에게는 어떻게든 없는 척 외면하고 숨기고 싶은 ‘부정적인 단점’ 역시 존재한다. 미스트리스 아메리카는 프란시스 하와는 정반대로 나의 ‘부정적인 단점’만을 있는 대로 끄집어낸다.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이 단점이 얼마나 한심하고 우스꽝스러운 것인지, 이로 인해 얼마나 큰 파문이 일어나는지 마치 놀리기라도 하듯이 세세하게 보여준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모든 등장인물은 제각각 치명적인 단점을 가지고 있고, 영화는 이를 보는 관객들이 자연스레 그들의 단점 하나하나를 평가하게 만든다. 캐릭터에게 감정적으로 동화되는 척도인 ‘공감성 수치’가 높은 이들이라면 미스트리스 아메리카를 보다가 몇 번씩 발버둥을 칠지도 모른다. (공감성 수치가 높은 나는 그랬다.)


그러나 이 글만 읽고 미스트리스 아메리카를 싫어하지는 말자. 이 영화는 솔직하게 평가하면 무척 재미있다. 주인공들은 수많은 단점을 드러내고 끝없이 잘못된 선택을 하지만, 그것마저도 하나같이 웃기다. 그들의 실수는 인생에 조금 오점만 남겼을 뿐, 그들이 상상한 만큼 심각한 일들은 사실 일어나지 않는다.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던 일들이 엄청난 파장을 일으키고, 완전히 망했다고 생각했을 때 생각보다 빠르게 회복이 되는 인생의 법칙을 이 영화는 귀엽게, 재미있게, 따뜻하게 보여주고 있다. 내가 나의 부정적인 단점에 대해 조금만 더 웃어넘길 수 있었다면 아마도 이 영화를 사랑하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이제 나는 이 글을 쓰며 미스트리스 아메리카와 좀 더 화해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영화가 나에게 가르쳐준 점은 세상 사람들은 나뿐만 아니라 누구나 부정적인 단점이 있고, 그걸 빨리 인정할수록 삶은 덜 힘들게 흘러간다는 것이다. 자신의 모든 단점이 ‘긍정적인 단점’이라면 좋겠지만, 우리에겐 어쩌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부정적인 단점’과 화해하는 일이 더 필요할지 모르겠다. 자기 자신에게 가장 솔직해졌을 때야말로 더 나은 사람이 될 기회가 온 것일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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