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ttery] 라임이의 라임오렌지나무
- Margo Jeong
- 2020년 7월 28일
- 2분 분량
도예를 처음 시작할 때부터 이건 꼭 만들어야지 결심한 게 몇 가지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친한 친구 B의 사랑스러운 고양이 '라임이'를 위한 밥그릇이었다.
라임이는 이름과 어울리는 노란 치즈(라기엔 애매한) 고양이로, 커다란 덩치와 새침한 성격이 매력이다.

이름이 라임이니까 컨셉은 '라임오렌지나무' 외에는 생각하지 않았다.
어린 시절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책이었던 J.M. 바스콘셀로스의 <나의 라임오렌지나무>.
처음 스케치 때는 정말 나무에 심긴 화분 모양 그대로 밥그릇을 만들려고 했지만, 녹색과 갈색보다는 백색과 오렌지색을 주 색으로 넣는 것이 더 상큼하겠다는 생각에 디자인을 조금 수정하게 되었다.
나의 컨셉 수정에 영감을 준 건축가 Al Descubierto의 작품.
그래서 지지대는 붓질 터치가 남아있는 내추럴한 오렌지로, 몸통은 백색에 라임오렌지가 잔뜩 달려있는 모양으로 디자인을 마치고 도자기 제작에 들어가게 되었다.
만들기 전 생각으로는, '라임이는 크고 밥을 먹으려면 안정감이 있어야하니까 그릇도 두껍고 크면 좋겠지?' 싶어 평소보다 두껍게 반죽을 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 후회했다... 여태 만들어본 작품 중에 가장 힘든 작업이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본능적으로...
어렵게 어렵게 판을 만들어 가능한 한 가장 크고 동그란 볼을 만들고, 탄탄한 지지대도 만들어주었다.
강아지 한 마리 키우는 인간이라 잘 모르지만 듣기로는 고양이들은 높은 밥그릇을 좋아한다지? 귀엽기는...
그릇의 모양이 완성된 후 이어진 작업은 가장 재미있었던 라임오렌지 만들기!
바깥에 붙일 작은 라임오렌지들과 잎사귀들, 그리고 그릇 안에 넣어줄 커다란 라임오렌지 한쌍을 만들었다.
이건 뭐 너무 재미있어서 순식간에 완성~ 대량생산에 익숙해진 기분이었다.
이렇게 해서 완전히 모양이 완성된 그릇을 말리기 전에 곧바로 색을 칠하기로 했다.
도자기에 색을 입히는 방법은 대략 세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흙이 촉촉할 때 색을 칠하는 것, 하나는 흙이 마른 후 색을 칠하는 것, 그리고 하나는 내가 자주 사용했던 흙 자체에 색을 넣어 반죽하는 것이다.
촉촉한 흙에 붓으로 색을 칠하는 방법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다소 긴장했다.
(게다가 함께 도예를 배우는 자매가 이 방법을 여러 번 시도했다가 다수 실패한 경험이 있었다.)
긴장한 것이 무색하게 성공적이었으면 좋았겠으나... 젖은 흙에 붓질하기는 내 생각보다 훨씬 더 어려웠다.
자꾸만 물감은 닦여나가고, 덧칠할 수록 이상한 붓자국은 심해져만 가는 것이다.
수정하고 또 수정하며 나도 모르게 색이 엄청나게 진해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도 지울 수 없었다.
뭐 이미 망했구나 생각했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해 색칠을 마무리하고, 건조된 후에 한번 더 수정 덧칠을 했다.
이렇게 해서 굽기 전 완성된 그릇은 꽤나 귀여운 모양이 되었다! 나중에 선생님께서 말해주시길 공방에 온 모두가 이 작품을 보고 극찬을 하며 누가 만들었냐고 궁금해했다고 한다. 나름 뿌듯한 순간ㅎㅎ
하앙 귀여워... 동글동글 귀여운 라임오렌지나무 형상이 잘 만들어져서 무척 기분이 좋았다.
이렇게 해서 가마로 직행! 라임오렌지들이 떨어져버릴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에 결과물을 기다리며 초조한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도예의 매력이자 단점인 불확실성은 언제나 우리를 안심할 수 없게 한다.
몇 주 뒤, 작품이 모두 구워져나왔으니 공방에 방문하라는 연락이 왔다.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나의 라임오렌지나무를 영접하는 순간!

ㅠㅠㅠㅠ걱정과 다르게 너무나 잘 나와준 나의 라임오렌지나무!
코일 쌓기가 아닌 판으로 만든 그릇이라 굽는 과정에서 약간의 찌그러짐이 있었지만, 그걸 무시해도 좋을 만큼 선명한 색감과 자연스러운 붓터치가 너무나 마음에 들었다!

그릇 속에 담긴 커다란 라임오렌지들도 너무나 귀엽게 완성! 하앙 귀여워ㅠㅠㅠㅠ
이리봐도 저리봐도 귀엽다. 너무나 잘 나왔다! 만족도 백배!
그 다음 주 설레는 마음으로 친구 집에 들러 라임이에게 라임오렌지나무를 선물해주었다.
한 가지 착오가 있었는데, 그릇이 너무 컸다는 점ㅎㅎ 그래서 밥그릇 대신 물그릇으로 사용하기로 했단다.
만들 때는 가장 힘들었지만, 그만큼이나 만들고 나니 가장 만족스러웠던 작품.
라임아, 물그릇 잘 쓰고 있니?ㅎㅎ 물 많이 마시고 건강하게 지내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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